내가 읽은 시

침묵지대 - 조용미

공산(功山) 2017. 7. 14. 15:25

   침묵지대

   조용미

 

 

   카르투지오 수도원 입구에 있는 표지판

   —침묵지대(Zone de Silence)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봉쇄수도원

 

   여행객들은 왜 침묵을 엿보려 하는가

   수도사들의 침묵과 고독을 엿보려 하는가

   카르투지온들의 하얀 언어를 훔치고 싶어 하는가

 

   침묵을 위대하다고 말하면 수다가 되어 버린다

   침묵을 고요하다 말해 버리면

   즉시 언어의 이중구조 안에 갇혀 버린다

 

   침묵지대는 툰드라지대처럼 추운가

   낮게 가라앉은 빛들이 들끓는가

   침묵은 규정될 수 있는가

 

   침묵 예찬, 침묵의 소리, 위대한 침묵, 침묵의 세계

   모두 다 침묵에 대해 말하고 있다

   침묵에 대해 그렇게 많은 말들이 필요한가

 

   침묵은 들을 수 있는가 침묵은

   느낄 수 있는가 침묵이, 침묵을……괴롭히지 말자

   침묵을 그냥 침묵이게 놔두자

 

   침묵지대라는 표지판을 걸어 두면 침묵이

   샘물처럼 생겨나게 될까 침묵이 오래 머무를 수 있을까

   침묵 아닌 것들을 막아 낼 수 있을까

 

   침묵이 숙연해질까

   수다스러운 침묵이 꽝꽝 고요해질까

   하여간 침묵지대가 필요하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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