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詩篇)
쉼보르스카
오, 인간이 만들어낸 국경선은 얼마나 부실하고, 견고하지 못한지요!
얼마나 많은 구름이 그 위로 아무런 제약 없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막의 모래 알갱이들이 한 나라에서 또 다른 나라로 흩날리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산속의 조약돌들이 생기 있게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낯선 토양을 향해 굴러가고 있는지.
열을 지어 나르거나 혹은 국경선의 바리케이드 위에 내려앉은 새들의 이름을
여기서 내가 굳이 일일이 언급할 필요가 있나요?
뭐, 그냥 평범한 참새라고 칩시다 ― 그 참새의 꼬리는 이미 이웃 나라에 속해 있겠죠.
부리는 아직 이쪽을 향하고 있지만.
게다가 가만 있지 않고, 몸을 까딱까딱 흔들고 있다면 어떻게 할까요?
무수히 많은 벌레들 중에 개미 한 마리를 예로 듭시다.
국경 수비대의 오른쪽 신발과 왼쪽 신발 사이에 놓인 그 개미는
어디로 가는 중인지, 어디서 왔는지, 대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할 거예요.
각 대륙에 산재한 모든 혼란과 무질서를
한눈에 속속들이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강물에 떠다니는 수천만 개의 잎사귀들 중에
반대편 해변에서 은밀히 떠내려온 쥐똥나무 잎이 섞여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뻔뻔스러우리만치 기다란 다리를 가진 문어가 그 발을 뻗어
바다 속 신성한 구역을 함부로 휘저어놓을 수도 있으니까요.
어떤 별이 어떤 별을 비추는지 분명히 볼 수 있게끔
별들의 위치를 바꿀 능력도 없으면서
과연 우리가 자연의 질서에 관해 논할 자격이 있는 걸까요?
사방으로 넓고 깊게 차오른 저 괘씸한 안개!
위풍당당 푸른 초원을 가득 메운 저 먼지 덩어리들!
공기의 파장을 타고 공명하는,
짹짹거리는 가냘픈 비명과 으르렁대는 괴성!
오로지 인간의 소유물만이 완벽하게 낯선 것이 될 수 있는 법.
나머지는 그저 여러 가지 잡풀이 뒤섞인 숲이고, 두더지가 파놓은 구멍이고,
바람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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