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의 집
이상국
그 해 겨울 영랑호 속으로
빚에 쫓겨온 서른세 살의 남자가
그의 아내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가던 날
미시령을 넘어온 장엄한 눈보라가
네 켤레의 신발을 이내 묻어주었다
고니나 청둥오리들은
겨우내 하늘 어디선가 결 고운 물무늬를 물고 와서는
뒤뚱거리며 내렸으며
때로 조용한 별빛을 흔들며
부채를 청산한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인근 모래기*까지 들리고는 했다
얼음꽃을 물고
수천 마리 새떼들이 길 떠나는 밤으로
젊은 내외는 먼 화진포까지 따라나갔고
마당가 외등 아래서
물고기와 장난치던 아이들은 오래도록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애들이 얼마나 추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의 뺨을 적신다
그래도 저녁마다
울산바위가 물 속의 집 뜨락에
오래 가는 놀빛을 떨어뜨리고 가거나
산 그림자 속 화암사 중들이
일부러 기웃거리다가 늦게 돌아가기 때문에
영랑호는 문을 닫지 않는 날이 많다
그런 날은 물 속의 집이 너무 환하게 들여다보였다
* 모래기는 영랑호 주변에 있는 마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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