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에 기대어
송수권(1940~2016)
누이야
가을 산 그리매*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苦惱)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山茶花)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 산 그리매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 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 산 그리매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 옴을
*그리매 : 그림자
― 《문학사상》1975.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琉璃窓 1 - 정지용 (0) | 2016.12.30 |
---|---|
빈집 - 송수권 (0) | 2016.12.14 |
지리산 뻐꾹새 - 송수권 (0) | 2016.12.14 |
압력솥 - 전순복 (0) | 2016.12.14 |
울돌목 - 문숙 (0) | 2016.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