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산문에 기대어 - 송수권

공산(功山) 2016. 12. 14. 19:03

   산문에 기대어

   송수권(1940~2016)

 

 

   누이야

   가을그리매*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苦惱)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山茶花)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 산 그리매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 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튀는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 산 그리매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속에 비쳐 옴을​​

 

   *그리매 : 그림자

 

      《문학사상》1975.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琉璃窓 1 - 정지용  (0) 2016.12.30
빈집 - 송수권  (0) 2016.12.14
지리산 뻐꾹새 - 송수권  (0) 2016.12.14
압력솥 - 전순복  (0) 2016.12.14
울돌목 - 문숙  (0) 2016.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