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지리산 뻐꾹새 - 송수권

공산(功山) 2016. 12. 14. 19:00

   지리산 뻐꾹새

   송수권

 

 

   여러 산봉우리에 여러 마리의 뻐꾸기가

   울음 울어

   때로 울음 울어

   석 석 삼년도 봄을 더 넘겨서야

   나는 길뜬 설움에 맛이 들고

   그것이 실상은 한 마리의 뻐꾹새임을

   알아냈다.

 

   지리산 하

   한 봉우리에 숨은 실체의 뻐꾹새가

   한 울음을 토해내면

   뒷산 봉우리 받아 넘기고

   또 뒷산 봉우리 받아 넘기고

   그래서 여러 마리의 뻐꾹새로 울음 우는 것을

   알았다.

 

   지리산 중

   저 연련連連한 산봉우리들이 다 울고 나서

   오래 남은 추스름 끝에

   비로소 한 소리 없는 강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섬진강 섬진강

   그 힘센 물줄기가

   하동 쪽 남해를 흘러들어

   남해군도의 여러 작은 섬을 밀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봄 하룻날 그 눈물 다 슬리어서

   지리산 하에서 울던 한 마리 뻐꾹새 울음이

   이승의 서러운 맨 마지막 빛깔로 남아

   이 세석細石 철쭉 꽃밭을 다 태우는 것을 보았다.

 

 

   * 길뜬 : 길이 덜 든.

   * 세석 : 지리산 정상 아래 부근의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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