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못박는 아버지 - 송유미

공산(功山) 2016. 10. 24. 22:11

   못박는 아버지

   송유미 

 

    

   전쟁과 혁명을 좋아하던 아버지

   군복을 벗자 떠돌이 도편수가 되었다

   생생한 못 하나면 전국 지도에 방점 찍던 아버지

   이제는 고층아파트 벽에 걸린 액자 속에 산다

   그래도 한시절 떠돌이 도편수로 이름을 날렸는지

   주막집 여자에게 돈만 떼이고 나를 얻은 아버지

   그 뜯어내기 어려운 들은 못질하고 대패질 하시는지

   액자 속에서 더 노랗게 늙어버렸다

   남의 가슴에 못질하면 니 가슴에도 못이 박히는 거여

   대낮에도 액자 속에서 잔못질처럼 중얼거리는 아버지,

   반평생 남짓은 못질로만 살았을 것인데,

   그래도 무슨 못이 그리 남은 것인지

   당신 손으로 꽝꽝 박은 속으로 떠나던 아버지,

   꽃상여 메고 가는 아들딸들도

   다 다른 구멍에 박아서

   자식끼리도, 가슴에 대못을 박게 하던 아버지,

   이제는 못 박힌 액자 속을 떠나시는지

   벽에 걸린 헐거운 못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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