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허공 모텔 - 강영은

공산(功山) 2016. 9. 17. 07:42

   허공 모텔

   강영은

 

 

   꽁무니에 바늘귀를 단 가시거미 한 마리, 
   감나무와 목련나무 사이 모텔 한 채 짓고 있다  
   저, 모텔에 세 들고 싶다

 

   장수하늘소 같은 사내 하나 끌어들여 
   꿈 속 집같이 흔들리는 그물 침대 위 
   내 깊은 잠 풀어놓고 싶다

 

   매일매일 줄타기하는 가시거미처럼 
   그 사내 걸어 온 길 칭칭 동여맨다면
   나, 밤마다 그 길 들락거릴 수 있으리  

 

   그 사내, 쓰고 온 모자 벗어버리고
   신고 온 신발도 벗어던져
   돌아갈 길 아주 잃어버린다면
   사내 닮은 어여쁜 죽음 하나 낳을 수 있으리

 

   그 죽음 자랄 때까지
   빵처럼 그 죽음 뜯어먹으며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는 날개 옷 한 벌
   자을 수 있으리

 

   저, 허공 모텔에 들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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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영은 1956년 제주 서귀포에서 태어났다. 2000미네르바로 등단했으며, 시예술상, 한국시문학상 수상 및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시집으로 녹색비단구렁이, 최초의 그늘, 풀등, 바다의 등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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