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애
함형수
내만 집에 있으면 그애는 배재밖 전신(電信)ㅅ대에 기댄 채 종시 들어오질 못하였다.
바삐 바삐 새하얀 운동복을 갈아입고 내가 웃방문으로 도망치는 것을 보고야 그애는 우리 집에 들어갔다.
인제는 그애가 갔을 쯤 할 때 내가 가만히 집으로 들어가 얼굴을 붉히고 어머니에게 물으면 그애는 어머니가 권하는 고기도 안 넣은 시래기 장물에 풋콩 조밥을 말아 맛있게 먹고 갔다고 한다.
오랜만에 한번씩 저의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우리 집에 오던 그애는 우리 집에 오는 것이 좋았나? 나빴나?
퉁퉁한 얼굴에 말이 없던 애― 그애의 이름은 뭐라고 불렀더라?
배재 ― '울타리'의 함경도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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