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마카로니 웨스턴
전봉건
누가
하모니카를 부는데
두레박 줄은 끊어지기 위해서 있고
손은 짓이겨지기 위해서 있고
눈은 감겨지기 위해서 있다
그곳에서는
누가 하모니카를 부는데
피를 뒤집어쓰고 죽은 저녁노을이
까마귀도 가지 않는 서쪽 낮은 하늘에
팽개쳐져 있다
全鳳健(1928~1988) 전후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시인인 전봉건은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났으며, 1950년 『문예』지에서 서정주와 김영랑의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그의 시세계는 참혹한 전쟁의 현실 속에서 관능적 서정과 희망의 언어를 노래한 초기시에서, 암담한 시대 현실을 관통하여 정신적 단련과 견인주의를 추구한 후기시로 변모해왔다.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춘향연가』『속의 바다』『피리』『북의 고향』『돌』, 시선집 『꿈속의 뼈』『새들에게』『전봉건 시선』『트럼펫 천사』『아지랭이 그리고 아픔』『기다리기』등이 있다. 한국시인협회상, 대한민국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그는 출판 기획자나 잡지 편집자로서도 인상적인 활동을 펼쳤는데, 특히 그가 창간한 시 월간지 『현대시학』은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국내 시 전문지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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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문화 전반이 통제되던 유신체제인 1970년대 말에 전봉건은 시집 『피리』(1979)를 발간하였는데 이 시집은 대부분 1970년대에 발표한 시들을 묶은 것이다. 특히 이 시기 발표한 연작시 「마카로니 웨스턴」 또한 이 유신이라는 70년대 지배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담론을 함축하고 있다. 마카로니 웨스턴은 이탈리아식 서부극을 지칭하는 말로 폭력과 살인을 저지르는 비영웅적인 주인공과 그에 대항하는 악당의 대결을 그린 영화의 장르를 이르는 말이다. 싸움과 배신 그리고 죽음이 난무하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세계는 가부장적이고 정치적인 억압이 통용하던 당시 한국 사회의 모습과 유사하며. 다섯 편의 연작시에 이러한 현실에 대한 부정과 저항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감시와 통제 속에서 누군가가 하모니카를 불고 있지만 아무도 그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은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거나 불신의 표현일 것이다. 유신의 독재 그리고 경제개발이라는 시대적 상황 아래 억압 받는 주체들의 현실은 “피를 뒤집어쓰고 죽은 저녁노을”처럼 힘들고 폭력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그러한 현실이 시적 주체에게는 ‘견딤’의 대상이자 동시에 ‘극복’의 대상이기도 하다. 누군가 하모니카를 부는데도 아무도 듣지 않는 “마카로니 웨스턴”은 그 당시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재현한 세계이다.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있는 장소에서 개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손을 짓이기거나 눈을 감는 것뿐인데 그것은 모두가 감시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문학의 헤테로토피아는 어떻게 기억되는가』, 전봉건 시의 장소와 현실 대응 방식(부분)
김지율(시인)
※인용한 시 속의 영화는 1970년 봄에 개봉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옛날 옛적 서부에서(Once Upon A Time In The West)」 음악: 엔니오 모리꼬네, 주연: 헨리 폰다, 제이슨 로바즈, 찰스 브론슨,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모티프는 하모니카 소리다. 음악이라기보다 들숨과 날숨으로만 불어지는 하모니카. 복수를 위해 개척지 서부의 어느 역에 하모니카 맨이 나타난다. 그가 연약한 소년 시절일 때의 기억. 나무에 밧줄로 목 맨 형이 묶인 채 동생의 어깨를 딛고 서있고, 동생의 우는 입에 악당이 하모니카를 물려준다. 들숨과 날숨으로만 소리를 내는 슬픈 하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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