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기

로버트 카파

공산(功山) 2025. 12. 17. 20:08

지난 일요일에 아내와 나는 울산에 다녀왔다. 방학을 맞은 김 교수가 미국의 한 대학교에서 포닥 과정의 연구를 하고 있는 제 색씨를 만나러 가기 전에 우리와 점심을 먹자고 했기 때문이다. 사진 찍기가 취미인 그가 외국 출장에서 사온 사진집을 내가 보라고 몇 권 주었는데, 그중에는 로버트 카파의 사진집도 있었다. 카파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단편적으로 조금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두툼한 사진집을 통해 그가 찍은 많은 보도 사진들과 짧았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버트 카파(Robert Capa,1913~1954)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프리드먼 엔드레 에르뇌'라는 본명으로 태어났다. 17세 때 좌익 학생운동을 하다 추방되어  베를린에서 저널리즘 공부를 했다. 그곳에서 생계를 위해 암실 조수로 일하면서 사진을 시작했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자 파리로 망명해 독일계 유대인 난민인 '게르다 타로'를 만나고(1934년), 그들은 연인이자 동료로서 함께 '로버트 카파'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며 사진을 찍어 판매하기 시작했다(1936년).

게르다 타로는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던 중에 후퇴하던 전차에 치여 안타까이 세상을 떠났다(1937년). 그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카파는 북아프리카, 시칠리아, 이탈리아, 프랑스 등 여러 전선에서 활동했다. 1947년에는 친구이자 미국의 소설가인 존 스타인벡과 함께 출판 준비를 위해 소련을 방문하기도 했다.
1954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취재하던 중, 북베트남에서 지뢰를 밟아 4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로버트 카파는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명언을 남겨 후대 사진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사진집
『ROBERRT CAPA』(2022 Silvana Editoriale S.p.A.)에 실린 몇 장의 사진을 여기에다 옮겨 두고 그의 짧은 생애를 기리고자 한다.

(아래 사진 중 푸르스름한 것은 내가 거실의 4중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간접 일광에서 사진집의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고, 더 흑백으로 보이는 것은 밤에 LED 조명등 아래서 찍었기 때문이다.)

사진집 표지(왼쪽). 한 농부가 미군 장교에게 독일군이 사라진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시칠리아 트로이나 부근, 1943). 코르도바 전선에서의 게르다 타로(오른쪽,1936.)
왕당파 민병대원의 죽음(오른쪽 페이지, 코르도바 전선, 1936).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병사들이 함께 있다(오른쪽 페이지 아래 사진, 테루엘 전선, 1937)
시칠리아 니코시아 부근 포로수용소로 행진하는 대열에서 처진 이탈리아 병사(위쪽 사진)와 튀니지 전쟁 난민들(아래쪽 사진, 1943). 오늘날의 것과 다름없는 자전거가 인상적이다.
호출을 기다리는 프랑스 구급대 운전병들(왼쪽, 카시노 부근,1943). 시칠리아 니코시아에서 포로수용소로 가는 행렬 뒤에 뒤처져 걷는 이탈리아 병사, 오늘날의 자전거와 똑같은 자전거가 인상적이다(오른쪽 위, 1943). 튀니지 전쟁 난민들(오른쪽 아래, 1943).
상륙하는 미군(노르망디 오마하 해변, 1944)
미군 병사들(왼쪽, 노르망디,1944)과 거리의 풍경(오른쪽 노르망디 생로, 1944)
카파가 대서양을 건너는 모습(왼쪽, 1941 또는 1942.). 존 스타인벡과 카파가 거울에 비친 모습(가운데, 소련, 1947.), 루스 오킨이 촬영한 카파(오른쪽, 파리, 1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