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날이 더워서 나는 새벽에 자전거를 타곤 한다. 머잖아 가을이 오고 그 가을이 깊어져서 새벽 공기가 손이 시릴 만큼 차가워지면 자전거 타는 시간을 해가 지는 저녁 무렵으로, 더 추운 겨울이 오면 다시 볕이 따사로운 낮 시간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올여름은 유난히 더워서 새벽에도 기온이 25°C 를 줄곧 웃돌아서 자전거 타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새벽 기온이 모처럼 23°C 정도까지 떨어져 시원한 공기를 만끽하며 파군재를 넘어 연경동을 거쳐 동변동까지 다녀왔다.
연경동에서 동변동 사이 동화천 둑길의 비포장 도로 구간에선 왕복 2차선 정도의 너비로 시멘트 포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물가의 산책로와 자전거길도 동변동과 연경동을 연결하는 공사가 동화천 좌안을 따라 진행되고 있었다. 공사가 곧 마무리되면 이쪽 방면으로의 자전거길이 한결 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동변동 동화천 산책로 옆 잔디밭에선 올해도 바나나나무들이 바나나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추운 겨울에 별도의 온실에서 키운 바나나나무를 따뜻한 봄날에 이곳으로 옮겨심는 정성이 없고는 노지에서 바나나가 열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시민들이 해마다 저 이국적인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대구 북구청의 그런 노력과 배려 덕분이니.
돌아오는 길에선 동화천 바닥에 훤칠한 키로 서 있는 몇몇 미루나무들을 바라보다가 사진을 찍었다. 예전엔 마을 어귀는 말할 것도 없고 버스가 다니던 신작로에 가로수로도 서 있던 흔한 나무이지만, 요즘은 무슨 까닭인지 보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더 반가운 이 나무들의 이파리들이 노랗게 물들면 그 모습도 사진을 찍을 것이라고, 나는 벌써부터 가을을, 그것도 만추를 기다리고 있다.
강바닥에 나무들이 너무 무성해져서 물의 흐름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면 가끔 관공서가 나서서 벌채를 하게 되는데, 그때도 저 나무들만은 베지 말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키가 큰 미루나무들은 아랫도리의 가지들만 조금 정리를 해 주면 물의 흐름에는 영향을 거의 주지 않을 테니까. 일찍이 봉무동 단산지 둘레길에서 미루나무를 만났을 땐 고향의 옛 어르신들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서 졸시 「미루나무」를 쓰기도 했던 내가 오늘 아침엔 동화천에 서 있는 미루나무들을 보면서 열렬한 미루나무 보호론자가 되기에 이르렀다.
꼿꼿한 자세로 드문드문 서 있는 저 미루나무들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까지 시원하고 경건해진다. 마치 이 혼탁한 세상에서 가짜뉴스나 왜곡된 진실에 휘둘리지 않는 올곧은 사람의 높고 외로운 정신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저 나무가 바람에 가만히 일렁일 때는 어쩌면 대지와 자연이 인간을 향해 피워 올리는 소망과 기원의 촛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저 촛불을 우리는 끄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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