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올 여름의 인생 공부​ - 최승자

공산(空山) 2023. 12. 28. 16:13

   올 여름의 인생 공부

   ​최승자

 

   모두가 바캉스를 떠난 파리에서

   나는 묘비처럼 외로웠다.

   고양이 한 마리가 발이 푹푹 빠지는 나의

   습한 낮잠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사라졌다.

   시간이 똑똑 수돗물 새는 소리로

   내 잠 속에 떨어져 내렸다.

   그러고서 흘러가지 않았다.

   엘튼 죤은 자신의 예술성이 한물갔음을 입증했고

   돈 맥글린은 아예 뽕짝으로 나섰다.

   송×식은 더욱 원숙해졌지만

   자칫하면 서××처럼 될지도 몰랐고

   그건 이제 썩을 일밖에 남지 않은 무르익은 참외라는 뜻일지도 몰랐다.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다르게 사랑하는 법

   감추는 법 건너뛰는 법 부정하는 법.

   그러면서 모든 사물의 배후를

   손가락으로 후벼 팔 것

   절대로 달관하지 말 것

   절대로 도통하지 말 것

   언제나 아이처럼 울 것

   아이처럼 배고파 울 것

   그리고 가능한 한 아이처럼 웃을 것

   한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다른 한 아이처럼 웃을 것.

 

 

   ―『이 時代의 사랑』문학과지성사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