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사람
장옥관
오피스텔 문을 따고 들어가니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없는 게 아니라 꽉 채우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화장실과 거실을 메우고 복도와 엘리베이터와
이웃집 문틈으로 스며든 이유가
외로움 때문이라고 예단해선 안 된다
단지 그는 갑갑했을 뿐이다
갑갑함이 저 스스로 몸 부풀려 이웃 집 현관문을 노크한 것일 게다
경계를 벗어나 공기를 장악한 그는 원래부터
바람이었다
오십이 넘도록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다니며
공간을 확장하고 저를 부풀렸다
미처 따라가지 못한 뼈는
화장실 문턱에 가지런히 누워 스멀스멀 구더기를 불러 들였다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서였다
견디다 못해 이웃들이 문 따고 들어가니
낡은 소파 밑에서 그가 키우던 포메라니안이
꼬리 흔들며 기어 나왔다고 한다
도대체 무얼 먹었는지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개는
묵비권을 행사했다고 한다
제가 본 것들을 끝내 다 말하지 않은 영특한 개였다
세를 준 주인이 서둘러 개를 안고 나가도 그는 따라나서지 않았다
이미 집의 일부가 된 것이다
벽지와 바닥은 물론 콘크리트 뼈대만 남기고 뜯어내도 그는
결코 그 오피스텔을 떠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진상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
소문을 막은 거라 속단해선 안 된다
사려 깊은 이웃들이 선택한 최선의 의례이기 때문이다
결코 그는
없는 사람이 아니다
이웃의 비강에,
공중에 새겨져 불멸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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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관의 시적 주체는 상실의 자리를 지킨다. 장옥관의 시는 부재하나 완전한 부재라고 말할 수 없으며 여전히 ‘그’로서 현존하는 이를 증명한다.
이 시는 현대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고독사 문제를 담고 있다. 그러나 고독사한 1인 가구 생할자의 경제적 어려움이나 관계의 빈곤 등과 같은 사정을 초점화한 시는 아니다. 시취가 잠긴 문 밖으로 퍼져나갈 때까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그’의 죽음을 연민하기 위함도 아니다. 화자가 주목하는 건 죽음 이후 ‘그’의 존재 방식이다.
“오피스텔 문을 따고 들어가니/ 사람이 없었다”고 하지만, “없는 게 아니라 꽉 채우고 있었다”는 말은 그가 “바람”으로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는 뜻과 같다. 이때 화자는 “그가/ 화장실과 거실을 메우고 복도와 엘리베이터와/ 이웃집 문틈으로 스며든 이유가/ 외로움 때문이라고 예단해선 안 된다”고 당부한다. 어떤 이유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그 죽음의 냄새로 알려진 것이나 그의 마지막을 “외로움”이라는 감정 안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는 뜻일 테다. 정작 ‘그’는 육체라는 몸의 경계를 벗어나고, 또 한 칸의 집이라는 “경계를 벗어나 공기를 장악”하고, “공간을 확장하고 저를 부풀”리는 식으로 살아남은 것이나 다름 아니니 말이다. 결국 “그”를 통해 화자는 죽음이 곧 존재의 소멸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와 같이 “집의 일부”로, “이웃의 비강에,/ 공중에 새겨져 불멸이” 됨으로써 현존할 수도 있을 테니.
우리 시대에 만연한 고독사 문제를 사례로 들어 논했으나 죽음이 곧 존재의 소멸은 아니라는 생각은 이와 같이 유효하다.
소유정 / 문학평론가
2018년〈조선일보〉신춘문예를 통해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주요 평론으로 「이토록 열렬한 마음: 여성 서사의 아이돌/팬픽 읽기를 통한 나/주체 다시 쓰기」「지금 '우리'의 이름으로 구축되는 공간」 등이 있고, 산문집 『세 개의 바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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