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중행(雪中行)
신경림(1935~ )
눈 속으로 눈 속으로 걸어들어가니 산이 있고 논밭이 있고 마을이 있고,
내가 버린 것들이 모여 눈을 맞고 있다.
어떤 것들은 반갑다 알은체를 하고 또 어떤 것들은 섭섭하다
외면을 한다.
나는 내가 그것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나를 버렸다고 강변하면서,
눈 속으로 눈 속으로 걸어들어가다가 내가 버린 것들 속에 섞여
나도 버려진다.
나로부터 버려지고 세상으로부터 버려진다.
눈 속으로 눈 속으로 걸어들어가면서 나는 한없이 행복하다.
내가 버린 것들 속에 섞여 버려져서 행복하고 나로부터 버려져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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