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미역국

공산(空山) 2021. 2. 1. 14:54

   미역국

   김수영

 

 

   미역국 위에 뜨는 기름이

   우리의 역사를 가르쳐준다 우리의 환희를

   풀 속에서는 노란 꽃이 지고 바람소리가 그릇 깨지는

   소리보다 더 서걱거린다

   우리는 그것을 영원의 소리라고 부른다

 

   해는 청교도가 대륙 동부에 상륙한 날보다 밝다

   우리의 재(災), 우리의 서걱거리는 말이여

   인생과 말의 간결

   우리는 그것을 전투의 소리라고 부른다

 

   미역국은 인생을 거꾸로 걷게 한다 그래도 우리는

   삼십대보다는 약간 젊어졌다

   육십이 넘으면 좀더 젊어질까

   기관포나 뗏목처럼 인생도 인생의 부분도

   통째 움직인다

   우리는 그것을 빈궁(貧窮)의 소리라고 부른다

 

   오오 환희여 미역국이여 미역국에 뜬 기름이여 구슬픈 조상(祖上)이여

   가뭄의 백성이여 퇴계든 정다산이든 수염 난 영감이면

   복덕방 사기꾼도 도적놈 저주라도 좋으니 제발 순조로워라

   자칭 예술파 시인들이 아무리 우리의 능변을 욕해도 이것이

   환희인 걸 어떻게 하랴

 

   인생도 인생의 부분도 통째 움직인다

   우리는 그것을 결혼의 소리라고 부른다

 

 

   (196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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