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나무의 소유권
마경덕
바람이 나무의 깃털을 스치면 가지에 걸린 새소리, 일제히
향나무의 목울대를 치고 올라 건너 옥탑방 처마 밑으로 팔려갔다
발가락 냄새 2g, 그늘 한 스푼, 저녁바람 반 국자
저울에 달아 만든 노래는 골목에서 가장 잘 팔리는 인기 품목
그늘을 제조하는 앞집 향나무는 참새들의 본가
나무의 발등은 새똥으로 얼룩졌다
어린 새가 뺨을 문지른 나무의 등짝
해마다 울음을 업어 키운 향나무는 Y자 새총으로 새들을 높이 쏘아 올렸다
잠든 새 울음을 흔들어보며 밤늦은 골목을 드나들었다
십 년 넘게,
나는 외상으로 새소리를 들었다
점심을 먹고 새들이 잠깐 조는 사이
전기톱이 향나무의 아랫도리를 물어뜯었다. 그때
나무가 우는소리를 들었다
수십 년 터를 잡은 텃새에게 사흘 전 이사 온 사내는 일조권을 주장햇다
문서 한 장 없는 새들에게 이주비는
한 푼도 지불되지 않았다
새소리가 철거되고 골목은 시세가 폭락했다
―『그녀의 외로움은 B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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