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풀이 자라는 쪽 - 김순애

공산(空山) 2015. 11. 30. 20:31

   풀이 자라는 쪽
   김순애



   풀들은 위로 자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잘려도 개의치 않는 쪽으로 자란다.
   또한 풀들은 마디를 갖고 있다지만
   잘린 부분이 가장 큰 마디가 된다.
   마당가 풀을 낫으로 베어놓고
   며칠 후면 금방 자란다.
   낮은 공중만큼 기름진 밭도 없을 것 같다.

   넓은 광장이 자라는 밭
   넓은 공터가 자라는 공중의 밭

   풀은 몰래 자란다.
   무엇을 감추기도 잘한다.
   그 속을 헤집어보면 깨진 사금파리도 들어있고
   초봄에 내린 비의 뿌리도 들어있고
   풀빛 뱀도 들어있다.
   그러나 벌레는 없고
   벌레들 소리만 들어있기도 하다.

   달은 빈 쪽으로 자라고
   둥근 쪽으로 빠져나간다.

   손톱은 늘 잘라지는 쪽으로 자란다.

 


   ―《시에》2015.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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