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황혼 - 김점용

공산(功山) 2018. 12. 25. 12:45

   황혼

   김점용

 

 

   어머니는 자꾸 숨겼다

   처음에는 옷장 속에 쌀통 안에 보일러실에 돈을 숨기더니

   새로 산 신발을 숨기고 시금치 씨를 숨기고

   호미를 숨기고 얻어 온 옆집 똥거름을 숨기고

   커다란 빨래 건조대까지 숨겼다

   선산에 묻은 아버지를 숨기고

   부산의 정신병원에 입원한 막내이모를 일본 대마도에 숨겼다가

   우리에게 들키자 다시 내 여동생 속에 꼭꼭 숨겼다

   하루는 멀쩡한 우리 집을 숨겼다가 경찰차를 타고 들어오더니

   자신의 머리카락과 옷을 가위 속에 가스렌지 속에 숨겼다

   오늘은 저 바다에 무엇을 숨겼을까

   선창가에 올라오는 어머니 뒤로

   서쪽 바다가 시뻘건 노을에 뒤덮여 있는데

   어머니가 난데없이 숙제를 낸다

   내 좀 찾아봐라 온 동네를 다 뒤져도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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