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실제(失題) - 박팔양

공산(功山) 2018. 12. 10. 11:04

   실제(失題)

   박팔양(1905~1988)

 


   나는 그대의 종달새 같은
   이야기를 사랑한다
   그러나 보다도 더 그대의
   말 없음을 사랑한다
   말은 마침내 한 개의 조그만
   아름다운 장난감

   나는 장난감에 싫증난 커가는 아이다

   말보다는 그대의 노래를
   나는 더 사랑한다
   진실로 그윽하고도 황홀한
   그대의 노래여!
   붉은 노을 서편 하늘에 빗기는
   여름 황혼에 그대의 부르는 노래
   얼마나 나를 즐겁게 하느뇨

   노래에도 싫증날 때 그대는
   들창 가에 기대어 침묵한다
   아아 얼마나 진실하고도
   화려한 침묵인고!
   나는 말없이 서 있는 아름다운
   그대의 창 너머로 여름 황혼의
   붉은 노을을 꿈과 같이 동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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