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염소 씨의 외출 - 홍일표

공산(功山) 2018. 6. 2. 22:15

    염소 씨의 외출

    홍일표

 

 

    흰 염소가 푸른 언덕을 끌고 간다 볼 때마다 산의 위치가 바뀌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어제의 산에 가서 염소를 찾는다 염소가 없다 눈과 머리가 여러 개가 되어 펄럭이지만 염소는 보이지 않는다 몇몇의 노인들은 풀밭 위에 잠시 내려와 놀던 구름을 따라간 것이라고 수군거린다

 

    염소가 옮겨다 놓은 산이 심심하게 혼자 논다 빈 의자처럼 눈앞의 바다만 온종일 바라보다 한 뼘 더 허리가 굽어진다 노인이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던 의자에 가끔 담배 연기처럼 왔다 가는 사람이 있다

 

    하얀 플라스틱 의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오물오물 산등성이의 구름을 뜯어 먹고 있다 염소가 입안에서 굴리고 놀던 산을 뱉어놓고 슬그머니 해안 절벽 쪽으로 이동한다

 

    낯선 산에 오른 사람들이 구름에 목줄을 매어 이건 쇠구슬처럼 부서지지 않는 염소라고 즐거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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