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나는 바람을 맛보았다 - 마경덕

공산(功山) 2016. 11. 7. 10:38

   나는 바람을 맛보았다

   마경덕
 

   강원도 깡촌, 줄창 시퍼렇게 서있는 여름산의 무르팍이 싱싱했다. 산비탈에서 굴러온 바람이 달리는 차창으로 맨발을 디밀었다. 발바닥에서 서늘한 그늘내가 났다. 떡대 좋은 산 하나를 끼고 돌자 풋내가 질펀했다. 산딸기를 만지고 온 농익은 바람이 딸기물 든 손으로 내 머리칼을 연신 어루만지고 버스는 투덜투덜 돌밭을 달렸다. 툭, 탁, 다급한 돌멩이가 계곡으로 튀고 물 젖은 바람이 벼랑을 타고 기어올랐다. 강바람은 이끼빛 수건을 목에 걸치고 있었다. 곳곳에 바람의 몸에 맞는 바람집이 있었다. 마을에 사는 바람은 미간을 찡그리고 밭두렁에 쪼그리고 있었다. 바람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뒷좌석에 마음을 눕히고 찬찬히 바람을 맛보기 시작했다. 개울에 발 담근 물소리를 집어먹으니 박하사탕을 깨문 듯 후련했다. 눈을 감고 바람의 뒷다리를 흠흠, 들이마셨다. 동시에 누군가 나를 맛보고 있었다. 익었나, 설었나, 뒤집고 있었다. ‘나’라는 맛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나를 한 입 베어 문 바람이 퉤퉤! 나를 뱉아버렸다.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밤 - 이해완  (0) 2016.11.20
도장 - 마경덕  (0) 2016.11.07
풀씨의 꿈 - 송유미  (0) 2016.10.25
인공눈물 - 송유미  (0) 2016.10.25
조치원(鳥致院) 지나며 - 송유미  (0) 201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