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 송경동

공산(功山) 2017. 2. 8. 11:40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송경동


   스물여덟 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 하지 않겠냐고 찾아왔다
   얘기 말엽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 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요?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유리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 년이 지나 요 근래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내게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닷물결에 밀리고 있으며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에 기대 있고
   걷어 채인 좌판,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 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현대시20083월호

'내가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문시 1 - 신동엽  (0) 2017.02.11
어머니의 나라말 - 송경동  (0) 2017.02.08
바다 취조실 - 송경동  (0) 2017.02.08
선술집 - 고은  (0) 2017.02.08
잠의 방언 - 김행숙  (0) 2017.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