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일흔 살의 인터뷰 - 천양희

공산(功山) 2017. 1. 22. 20:38

   일흔 살의 인터뷰

   천양희

 

 

   나는 오늘 늦은 인터뷰를 했습니다

   세월은 피부의 주름살을 늘리고

   해는 서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당신이 무엇이 되고 싶었느냐고

   입술에 바다를 물고 그가 물었을 때

   나는 내가 되고 싶었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노을이며 파도며

   다른 무엇인가 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늘 실패했거든요

   정열의 상실은 주름살을 늘리고

   서쪽은 노을로 물들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살았냐고

   해송을 붙들고 그가 물었을 때

   희망을 버리니까 살았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내일에 속는 것보다

   세월에 속는 것이 나았거든요

   꽃을 보고 슬픔을 극복하겠다고

   기울어지는 해를 붙잡았습니다

   당신은 어느 때 우느냐고

   파도를 밀치며 그가 물었을 때

   행복을 알고도 가지지 못했을 때 운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보일까 말까 한 작은 간이역이 행복이었거든요

   일흔 살의 인터뷰를 마치며

   마흔 살의 그가 말했습니다

   떨어진 꽃잎 앞에서도 배워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고

   참 좋은 인터뷰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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