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우연만은 아니다 - 정채원

공산(功山) 2026. 9. 10. 21:25

   우연만은 아니다

   정채원(1951~ )

 

 

   어쩌면

   다른 우주의 나는

   아직 너의 손을 놓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이 별에선 놓쳐버린 순간들이

   그곳에선 꽃처럼 피어나

   바람 속을 스치는 향기로 나를 부르거나

 

   서로를 잃어버릴 걱정이 없는 곳에서

   우리는 같은 노래를 듣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별의 계단 끝에 앉아 너에게 편지를 쓰고

   너는 또 다른 별의 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자거나

   나를 기억하지 못한 채 웃고 있겠지

 

   별 하나가 꺼질 때

   누군가의 기억이 켜진다

 

   시간은 한 줄이 아니라

   겹겹이 포개진 강물,

   뒤척이는 물결이 앞선 물결의 꿈을 흔든다

 

   시간의 직선을 비틀어

   두 생을 한 점으로 포개는 일

 

   아주 먼 별빛 하나가 닿는 그 찰나에

   우리의 마음은 또 잠시 스칠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너를 모르면서도 영문 모를 떨림으로

   너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계간 《가히》 2026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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