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만은 아니다
정채원(1951~ )
어쩌면
다른 우주의 나는
아직 너의 손을 놓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이 별에선 놓쳐버린 순간들이
그곳에선 꽃처럼 피어나
바람 속을 스치는 향기로 나를 부르거나
서로를 잃어버릴 걱정이 없는 곳에서
우리는 같은 노래를 듣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별의 계단 끝에 앉아 너에게 편지를 쓰고
너는 또 다른 별의 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자거나
나를 기억하지 못한 채 웃고 있겠지
별 하나가 꺼질 때
누군가의 기억이 켜진다
시간은 한 줄이 아니라
겹겹이 포개진 강물,
뒤척이는 물결이 앞선 물결의 꿈을 흔든다
시간의 직선을 비틀어
두 생을 한 점으로 포개는 일
아주 먼 별빛 하나가 닿는 그 찰나에
우리의 마음은 또 잠시 스칠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너를 모르면서도 영문 모를 떨림으로
너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계간 《가히》 2026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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