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시

널따란 화분

공산(空山) 2021. 2. 23. 22:18

   널따란 화분

   김상동

 

 

   이 아파트에 십 년을 살면서도

   위층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그 집 창밖 선반 위 화분에 아스라이

   잡초들이 살고 있다는 것만 안다

 

   그 잡초들이 나, , , , 하며

   우리 집 쥐똥나무 화분 위로 풀풀 씨를 날려

   해마다 장마가 지나간 이맘때면

   잡초를 뽑느라 짜증이 나곤 했다

 

   그것이 위층 사람들의 풋풋한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모처럼 날이 갠 오늘 오후다

 

   나는 널따란 화분에 흙을 가득 담아

   창밖 선반 위에다 올려 두었다

   누군가 저 끝에서 날려 보내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건 받아 싹 틔워 가꾸리라고

 

   쇠비름 괭이밥 강아지풀도

   오늘부터는 잡초가 아니라고

 

 

    『구름의 뿌리』그루, 202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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