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외지(外地) - 오정국

공산(空山) 2019. 7. 9. 09:33

   외지(外地)

   오정국

   

 

   나는 나로부터 너무 멀리 왔다

   허구와 허구가 뒤섞이고, 스토리와 스토리가 엉키듯

   당도한 곳, 이곳이 외지다

 

   지금 내 가슴을 열어 보면

   번갯불의 녹슨 칼과

   뽕나무 등걸의 검붉은 심장,

   표지가 뜯겨 나간 몇 권의 책이 있다

 

   여기서 나는

   차갑고 불길한* 불꽃의 책을 읽었다

 

   너무 짧거나 긴 생애들

 

   가당찮은 우연의 목록을 뒤적여 보면

   엇갈린 사랑의 기나긴 이별

   검은 상처의 블루스**

   질척거리는 길바닥을 떠나지 않는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세월의 철길 아래

   회오리치듯 뻗어 가는 담장의 꽃들

   철따라 익어 가는 붉은 열매들

 

   이제 내 가슴을 열어 보면

   땡볕의 돌멩이와

   발을 헛디딘 흙구덩이,

   새의 날갯죽지 같은 게 흩어져 있다

 

 

   *샤를 보들레르가 그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글 중 악의 꽃이라는 책은 차갑고 불길한 아름다움을 입고 있습니다.”에서 따옴.

   **미국 흑인 영가 Broken Promises을 번안한 대중가요 제목.

 

 

   ―계간문학들2019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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