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젖은 생각 - 권현형

공산(空山) 2019. 6. 11. 15:58

   젖은 생각

   권현형

 

 

   마른 빨래에서 덜 휘발된 사람의 온기,

   달큰한 비린내를 맡으며 통증처럼

   누군가 욱신욱신 그립다

   삼월의 창문을 열어놓고 설거지통 그릇들을

   소리 나게 닦으며 시들어가는 화초에 물을 주며

   나는 자꾸 기린처럼 목이 길어진다

   온 집안을 빙글빙글 바람개비 돌리며

   바람이 좋아 바람이 너무 좋아 고백하는 내게

   어머니는 봄바람엔 뭐든 잘 마르지 하신다

   초봄 바람이 너무 좋아 어머니는

   무엇이든 말릴 생각을 하시고

   나는 무엇이든 젖은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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