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생각
권현형
마른 빨래에서 덜 휘발된 사람의 온기,
달큰한 비린내를 맡으며 통증처럼
누군가 욱신욱신 그립다
삼월의 창문을 열어놓고 설거지통 그릇들을
소리 나게 닦으며 시들어가는 화초에 물을 주며
나는 자꾸 기린처럼 목이 길어진다
온 집안을 빙글빙글 바람개비 돌리며
바람이 좋아 바람이 너무 좋아 고백하는 내게
어머니는 봄바람엔 뭐든 잘 마르지 하신다
초봄 바람이 너무 좋아 어머니는
무엇이든 말릴 생각을 하시고
나는 무엇이든 젖은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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