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네
신대철
평지 끝에서 산속으로 쫓겨 들어온 그해 겨울, 물소리도 끊긴 옻 샘에서 얼음 숨구멍을 쪼던 까만 물까마귀와 마주쳤네. 물까마귀는 나를 깊이 지켜보았고 나는 한눈 팔며 주춤거렸네. 더 쫓길 데 없어 아주 몸속으로 기어들고 싶었네. 몸 속, 기어들면 영혼이 비치지 않는 곳에서 살고 싶었네.
겨울 가고 겨울
바위틈에서 물까마귀 언 발자국만 남기고
사람도 산도 잊고 한데에서
나는 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네.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 문학과지성사,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