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철

나는 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네

공산(功山) 2015. 11. 19. 21:52

   나는 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네
   신대철 


   평지 끝에서 산속으로 쫓겨 들어온 그해 겨울, 물소리도 끊긴 옻 샘에서 얼음 숨구멍을 쪼던 까만 물까마귀와 마주쳤네. 물까마귀는 나를 깊이 지켜보았고 나는 한눈 팔며 주춤거렸네. 더 쫓길 데 없어 아주 몸속으로 기어들고 싶었네. 몸 속, 기어들면 영혼이 비치지 않는 곳에서 살고 싶었네.

   겨울 가고 겨울
   바위틈에서 물까마귀 언 발자국만 남기고
   사람도 산도 잊고 한데에서
   나는 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네.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 문학과지성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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