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간단한 부탁 - 정현종

공산(功山) 2017. 1. 12. 22:10

   간단한 부탁

   정현종(1939~)

 

 

   지구의 한쪽에서

   그에 대한 어떤 수식어도 즉시 미사일로 파괴되고

   그 어떤 형용사도 즉시 피투성이가 되며

   그 어떤 동사도 즉시 참혹하게 정지하는

   전쟁을 하고 있을 때,

   저녁 먹고

   빈들빈들

   남녀 두 사람이

   동네 상가 꽃집 진열장을

   들여다보고 있는

   풍경의 감동이여!

   전쟁을 계획하고

   비극을 연출하는 사람들이여

   저 사람들의 빈들거리는 산보를

   방해하지 말아다오.

   저 저녁 산보가

   내일도 모레도 계속 되도록

   내버려둬 다오.

   꽃집의 유리창을 깨지 말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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