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루까스의 장미 - 김해자

공산(功山) 2016. 3. 1. 16:54

   루까스의 장미

   김해자

 

 

   우리는 짐승이 돼버렸어오,

   장미 위에 파리 장미 밑에 구더기

   우리의 군왕들은 이마를 조아리며 뿌리에 붙어 살지

   권력은 욕심이 없어 다 나눠 주지

   다 가져 물도 땅도 전기도 기차도

   민영화 민영화 너희가 다 가져

   머잖아 붙잡고 울 나라조차 팔아먹으리라

 

   우리는 괴물이 돼버렸어

   오, 장미 위에 파리 장미 밑에 금덩이

   독재자의 금고는 장미 아래 묻혀 있지

   오오, 신기해라 향기 대신 돈이 줄줄 새 나오네

   보이지 않는 손은 위대해 칼 대신 깃털 달린 펜으로

   날개를 달아주었네 시간은 돈,

   속도를 멈출 수 없었네 오오, 놀라워라

   기차는 철로를 벗어나 하늘로 날아갔네

 

   우리는 짐승이 돼버렸네 오, 장미 위에 파리

   거리에서 노래 부르던 스물두 살 루까스는 사라졌네

   짐승이 되기 전 부서졌네 이 칸과 저 칸 사이

   꽃잎처럼 납작하게 붙어버렸네

   으깨진 노란 살점 장미는 노래

   철길에 엉긴 피 장미는 붉어

   꽃을 뿌려라 장미 위에 장미

   흩어진 네 곁에 한 세계가 열리고 있다

 

 

   ―『집에 가자』삶창,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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