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학굣길은 시오리 가까이나 되는 먼 길이었다. 살던 곳이 팔공산 중턱에 자리 잡은 하늘 아래 첫 동네이다 보니 등굣길은 줄곧 내리막이고 하굣길은 숨차는 오르막이었다. ‘독 씻고 단지 씻고’ 하나 뿐인 귀한 아들이 먼 길을 다니기가 힘들까 봐 부모님은 한 살을 더 먹여 아홉 살에 나를 국민학교에 입학시키셨다. 봄날엔 그 길가에 참꽃(진달래), 찔레꽃, 조팝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여름날의 하굣길엔 중간의 큰 솔밭과 아랫마을 어귀의 당산 느티나무 숲이 있어 거기서 무거운 책가방을 내려놓고 쉬기에 좋았다. 꼬박 9년을 걸어 다녔으니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눈을 감으면 길바닥에 박힌 돌부리 하나까지 훤하다. 근년에 나는 아스팔트 대로를 두고 일부러 그 좁은 길을 가끔 다니며 추억에 잠길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