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긍지의 날 - 김수영

공산(空山) 2017. 6. 10. 20:41

   긍지의 날

   김수영

 

 

   너무나 잘 아는

   순환(循環)의 원리(原理)를 위하여

   나는 피로(疲勞)하였고

   또 나는

   영원(永遠)히 피로(疲勞)할 것이기에

   구태여 옛날을 돌아보지 않아도

   설움과 아름다움을 대신하여 있는 나의 긍지

   오늘은 필경 긍지의 날인가 보다

 

   내가 살기 위하여

   몇개의 번개같은 환상(幻想)이 필요(必要)하다 하더라도

   꿈은 교훈(敎訓)

   청춘(靑春) 물 구름

   피로(疲勞)들이 몇배의 아름다움을 가()하여 있을 때도

   나의 원천(源泉)과 더불어

   나의 최종점(最終點)은 긍지

   파도(波濤)처럼 요동(搖動)하여

   소리가 없고

   비처럼 퍼부어

   젖지 않는 것

 

   그리하여

   피로(疲勞)도 내가 만드는 것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

   그러할 때면은 나의 몸은 항상

   한치를 더 자라는 꽃이 아니더냐

   오늘은 필경 여러가지를 합한 긍지의 날인가 보다

   암만 불러도 싫지 않은 긍지의 날인가 보다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긍지의 날인가 보다

   이것이 나의 날

   내가 자라는 날인가 보다

 

   <195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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