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지의 날
김수영
너무나 잘 아는
순환(循環)의 원리(原理)를 위하여
나는 피로(疲勞)하였고
또 나는
영원(永遠)히 피로(疲勞)할 것이기에
구태여 옛날을 돌아보지 않아도
설움과 아름다움을 대신하여 있는 나의 긍지
오늘은 필경 긍지의 날인가 보다
내가 살기 위하여
몇개의 번개같은 환상(幻想)이 필요(必要)하다 하더라도
꿈은 교훈(敎訓)
청춘(靑春) 물 구름
피로(疲勞)들이 몇배의 아름다움을 가(加)하여 있을 때도
나의 원천(源泉)과 더불어
나의 최종점(最終點)은 긍지
파도(波濤)처럼 요동(搖動)하여
소리가 없고
비처럼 퍼부어
젖지 않는 것
그리하여
피로(疲勞)도 내가 만드는 것
긍지도 내가 만드는 것
그러할 때면은 나의 몸은 항상
한치를 더 자라는 꽃이 아니더냐
오늘은 필경 여러가지를 합한 긍지의 날인가 보다
암만 불러도 싫지 않은 긍지의 날인가 보다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긍지의 날인가 보다
이것이 나의 날
내가 자라는 날인가 보다
<195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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