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시

이승희의 「파주 9」 해설 - 최형심

공산(功山) 2026. 10. 3. 11:11

   파주 9
   이승희(1965∼ )
 
 
   별 사이로 뱀 한 마리 오래 지나간다
 
   비로소 낮으로부터 놓여난 너는
   발가락이 많이 굽었다
   질문도 없이 만나는 생처럼
   구부정한 어깨를 지나면
   이국의 밤이 따뜻해질까
   국수 먹으러 갈까
   카드점을 보러 갈까
   좀 아파 보여
 
   오늘 뜨는 별은 다 모르는 사이 같아서
 
   가만히 만져보는 어둠
   반쯤 둥근 무덤 같구나
   어느 부분이 지워졌는지 알 수 없어서
   막차가 사라진 곳으로 자라는 식물들
   너무 멀리가지는 말자고
   남은 얼굴로 웃어주자
 
   여기 없는 그 모든 게 별이 된다는
   우린 그런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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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라는 지명은 지도 위의 가장자리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시의 밤도 그 가장자리에서 시작됩니다. 막차가 사라진 그곳에서도 식물들은 자라납니다. 사람이 더는 닿지 않는 자리에서 오히려 무언가가 자라고 있다는 것. 끊긴 노선의 끝이 다른 생명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곳의 어둠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반쯤 둥근 무덤”처럼 손으로 더듬어 보는 대상입니다. 눈으로는 “어느 부분이 지워졌는지” 알 수 없기에, 더듬어 확인하려는 이 몸짓은 상실을 대하는 가장 낮고 조심스러운 방식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너무 멀리 가지는 말자”는 말은 단순한 만류로 들리지 않습니다. 접경에서 한 걸음은 곧 경계를 넘는 일이 되고, 애도에서 한 걸음은 떠난 이에게서 멀어지거나 그를 따라 너무 깊이 들어가는 일이 됩니다. 화자는 그 두 경계 사이에 서서 “남은 얼굴로 웃어주자”고 말합니다.
   마지막 행에서 시는 비로소 별을 부릅니다. 다만, “별이 된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말합니다. 막차가 끊긴 변두리에서 우리가 붙들 수 있는 것은 확신이 아니라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서로에게 건네는 일 자체가 어둠 속의 작은 불빛이 됩니다. 별은 거기 없는 것들이 도달하는 곳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이 서로 나누는 말 속에서 비로소 켜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최형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