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어주는 사람
이덕규(1961~ )
오래전에 냇물을 업어 건네주는 직업이 있었다고 한다
물가를 서성이다 냇물 앞에서 난감해하는 이에게 넓은 등을 내주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선뜻 업히지 않기에
동전 한 닢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업히는 사람의 입이 함박만해졌다고 한다
찰방찰방 사내의 벗은 발도 즐겁게 물속의 흐린 길을 더듬었다고 한다
등짝은 구들장 같고
종아리는 교각 같았다고 한다
짐을 건네주고 고구마 몇 알
옥수수 몇 개를 받아든 적도 있다고 한다
병든 사람을 집에까지 업어다 주고 그날 받은 삯을
모두 내려놓고 온 적도 있다고 한다
세상 끝까지 업어다주고 싶은 사람도 한 번은 만났다고 한다
일생 남의 몸을 자신의 몸으로 버티고 살아서
일생 남의 몸으로 자신의 몸을 버티고 살아서
그가 죽었을 때, 한동안 그의 몸에 깃든
다른 이들의 체온과 맥박을 진정시키느라 사람들이 애를 먹었다고 한다
―계간 《문학동네》 202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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