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자라는 쪽
김순애
풀들은 위로 자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잘려도 개의치 않는 쪽으로 자란다.
또한 풀들은 마디를 갖고 있다지만
잘린 부분이 가장 큰 마디가 된다.
마당가 풀을 낫으로 베어놓고
며칠 후면 금방 자란다.
낮은 공중만큼 기름진 밭도 없을 것 같다.
넓은 광장이 자라는 밭
넓은 공터가 자라는 공중의 밭
풀은 몰래 자란다.
무엇을 감추기도 잘한다.
그 속을 헤집어보면 깨진 사금파리도 들어있고
초봄에 내린 비의 뿌리도 들어있고
풀빛 뱀도 들어있다.
그러나 벌레는 없고
벌레들 소리만 들어있기도 하다.
달은 빈 쪽으로 자라고
둥근 쪽으로 빠져나간다.
손톱은 늘 잘라지는 쪽으로 자란다.
―《시에》2015.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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