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세한도 - 고재종

공산(功山) 2017. 6. 11. 09:55

   세한도

   고재종

 

 

   날로 기우듬해 가는 마을 회관 옆

   청솔 한 그루 꼿꼿이 서 있다

 

   한때는 앰프 방송 하나로

   집집의 새앙쥐까지 깨우던 회관 옆,

   그 둥치의 터지고 갈라진 아픔으로

   푸른 눈 더욱 못 감는다

 

   그 회관 들창 거덜 내는 댓바람 때마다

   청솔은 또 한바탕 노엽게 운다.

   거기 술만 취하면 앰프를 켜고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이장과 함께.

 

   생산도 새마을도 다 끊긴 궁벽, 그러나

   저기 난장 난 비닐하우스를 일으키다

   그 청솔 바라보는 몇몇들 보아라.

 

   그때마다, 삭바람마저 빗질하여

   서러움조차 잘 걸러 내어

   푸른 숨결을 풀어내는 청솔 보아라.

 

 

   나는 희망의 노예는 아니거니와

   까막까치 얼어 죽는 이 아침에도

   저 동녘에선 꼭두서니빛 타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