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 문정희

공산(功山) 2017. 1. 30. 20:18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문정희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면

   해가 질 때였을 것이다

   숨죽여 홀로 운 것도 그때였을 것이다

 

   해가 다시 떠오르지 않을지도 몰라

   해가 다시 떠오르지 않으면

   당신을 다시 못 볼지도 몰라

   입술을 열어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면……

 

   한 존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을

   꽃 속에 박힌 까아만 죽음을

   비로소 알며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나의 심장이 뛰는 것을

   당신께 고백한 적이 있다면……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절박하게 허공을 두드리며

   사랑을 말한 적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해가 질 때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