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사리원 길 - 고형렬

공산(功山) 2017. 1. 15. 16:44

   사리원 길

   고형렬

 

 

   한적한 사리원 길을 걸어간다

   풀벌레들이 즐겁게 울고

   주인 없는 사과나무 가지 사이에서

   사과가 발갛게도

   잎 부럽지 않게 붉었다

   한 이민이 벙거지를 어색하게 눌러쓰고

   내 앞을 가로질러 들판으로 들어가고

   그때부터 내 죄없는 귀에는

   까실한 벼이삭 소리가 들려왔다

   먼지 한 점 없는 사리원 길

   나는 사리원 길을 걸어가고 있다 언제부턴가

   내가 사리원 한적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가는 발목 덩치 큰 소의 배 밑으로

   이름 알 수 없는 산줄기를 보다가

   나는 너무나도 자유스럽게,고향의 빛을 닮아간다

   날고 싶다 아니 날고 싶지 않다

   나는 이 지상서 그냥 살고 싶다

   나는 인제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어떠한 장애도 없이 걸으면서

   가을 공기 속에서 생각하였다

   어떻게 인제 어떻게 나와 세상을 사랑해주어야 할까

   젊은 날을 어려웁게 살아가는 벗들아

   나는 사리원 길을 너무 일찍

   걸어가고 있나보다

   이 깨끗하고 하늘과 산천이 맑은 사리원 길을

   사리원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