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조태 칼국수 - 고형렬
공산(功山)
2017. 1. 15. 16:43
조태 칼국수
고형렬
눈이 우르릉거리는 사나운 날엔 국수를 해 먹는다. 애곤지 알이 명태머리 꼬리가 처박는 폭설. 된장을 푼 멸치 국물이 가스불에 설설 맴도는, 까닭없이 궁핍한 서울. 엉덩이 들고 홍두깨로 민 반죽을 칼질하고 밀가루 뿌려놓은 긴 국숫발. 바다 모래불 가 눈발을 그리는 객지, 하며 창밖에 펄펄 날리는 하늘 눈사태 바라보는 나는 이런다,
이런 날은 이 조태 칼국수만이
저 을씨년하고 어두운 날씨를 이길 수 있다.
—『밤 미시령』 창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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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釣太) - 주낙으로 잡은 명태. 대개 자잘한 것이 많이 물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