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빈집 - 송수권

공산(功山) 2016. 12. 14. 19:04

   빈집

   송수권

 

 

   오래도록 잠긴 저 문에

   누군가 빗장을 푼다

   삭아내린 싸리 울바자 다시 세우고

   눈보라가 설쳐대는 툇마루와

   댓돌을 쓸고

   댓돌 위에 신발 몇 켤레도 가지런하다

   어제는 서울서 일만이네 식구가 내려와

   밤새도록 저 창호 문발에 불빛 따뜻하다

 

   그 불빛 새어 나와

   온 마을이 다 환하다

   낯선 듯 동네 개가 컹컹 짖고

   올바자를 넘는 애기 울음소리

   동쪽 하늘에 뜬 샛별이 다 파르르 떤다

   마당가 바지랑대에 널린 애기똥물빛

   이제야 사람이 사람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아침부터 굴뚝의 연기가 치솟아

   한밭재 대숲머리를 돌아나가는

   저 들판의 자욱한 연기 보아라

   오래 잊힌 자진모리 설움 한 가락이

   그렇게 풀리는구나

 

   IMF가 대순가 돌아가야지 돌아가야지

   벼르고 벼르던 30년 세월

   조금 일찍 돌아온 것뿐이다

   조금 앞당겨 돌아온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