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산경 - 도종환

공산(功山) 2016. 9. 26. 23:46

   산경

   도종환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 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다

   골짜기 물에 호미를 씻는 동안

   손에 묻은 흙은 저절로 씻겨 내려갔다

   앞산 뒷산에 큰 도움은 못 되었지만

   하늘 아래 허물없이 하루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