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 김기택

공산(功山) 2016. 6. 24. 09:58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김기택

 

 

   텔레비전을 끄자

   풀벌레 소리

   어둠과 함께 방 안 가득 들어온다

   어둠 속에 들으니 벌레 소리들 환하다

   별빛이 묻어 더 낭랑하다

   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큰 울음 사이에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그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한다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드나드는

   그 까맣고 좁은 통로들을 생각한다

   그 통로의 끝에 두근거리며 매달린

   여린 마음들을 생각한다

   발뒤꿈치처럼 두꺼운 내 귀에 부딪쳤다가

   되돌아간 소리들을 생각한다

   브라운관이 뿜어 낸 현란한 빛이

   내 눈과 귀를 두껍게 채우는 동안

   그 울음소리들은 수없이 나에게 왔다가

   너무 단단한 벽에 놀라 되돌아갔을 것이다

   하루살이들처럼 전등에 부딪쳤다가

   바닥에 새카맣게 떨어졌을 것이다

   크게 밤공기 들이쉬니

   허파 속으로 그 소리들이 들어온다

   허파도 별빛이 묻어 조금은 환해진다

 

 

   ― 『소』 문학과지성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