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수평(水平) - 문태준

공산(功山) 2017. 8. 30. 17:00

   수평(水平)

   문태준

 

 

   단 하나의 잠자리가 내 눈앞에 내려앉았다

   염주알 같은 눈으로 나를 보면서

   투명한 두 날개를 수평(水平)으로 펼쳤다

   모시 같은 날개를 연잎처럼 수평으로 펼쳤다

   좌우가 미동조차 없다

   물 위에 뜬 머구리밥 같다

   나는 생각의 고개를 돌려 좌우를 보는데

   가문 날 땅벌레가 봉긋이 지어놓은 땅구멍도 보고

   마당을 점점 덮어오는 잡풀의 억센 손도 더듬어보는데

   내 생각이 좌우로 두리번거려 흔들리는 동안에도

   잠자리는 여전히 고요한 수평이다

   한 마리 잠자리가 만들어놓은 이 수평 앞에

   내가 세워놓았던 수많은 좌우의 병풍들이 쓰러진다

   하늘은 이렇게 무서운 수평을 길러내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