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일요일이다 - 장옥관
공산(功山)
2024. 11. 10. 17:34
일요일이다
장옥관
다시 일요일이다
태양은 여느 태양과 다르지 않다
어제 그 자리 그 시간에 조금 옆쪽으로 비켜 앉았다
직접 보진 못하고 감은 눈으로만 보았다
어젯밤엔 초나흘 달을 보았다
눈 아래 찢어진 흉터 같았다
그제 밤에 본 것보다 좀더 벌어져 있었다
파밭의 파가 조금 더 솟고
자두나무 가지가 조금 더 처진다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늙었다
그젠 삼십 년 입은 바지를 버렸다
옷을 버리는 일은 슬프다
버리고 버림받는 일은 유정(有情)한 일이다
다시 일요일이라서 슬프다
하루하루를 버린다
어제보다 우주가 조금 더 옮겨 앉았다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