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진실 혹은 거짓 - 서형국
공산(功山)
2022. 4. 1. 11:11
진실 혹은 거짓
서형국
남자에겐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가 있었다
물을 주지 않아도 시들지 않는 나무
협상을 합시다
내 수중엔 이틀을 버틸 술값이 있고 당신은 나와 흥정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나는 오래 살고 싶고 명예를 갖고 싶으며 후손에게 오래 기억되고 싶소 단,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데 남의 불행을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빈틈없는 제안이었다
날이 밝아 탁자엔 퇴고를 마친 원고 뭉치 위로 한 뼘이나 길어진 나무의 그림자가 꼭 두 잔이 모자랐던 술병을 끌어안고 연리지로 뻗어 있었다
세월은 흘렀고
남자는 헌책방에서 간간이 펼쳐진다는 소문이 돌았다
완벽한 거래였다
ㅡ공저『시골시인-K』(걷는사람, 2021)
서형국 / 1973년 경남 창원 출생. 2018년《모던포엠》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