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이따금 봄이 찾아와 - 나희덕

공산(功山) 2021. 2. 21. 20:40

   이따금 봄이 찾아와

   나희덕

 

 

   내 말이 네게로 흐르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말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공중에서 얼어붙는다
   허공에 닿자 굳어버리는 거미줄처럼

   침묵의 소문만이 무성할 뿐
   말의 얼음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따금 봄이 찾아와
   새로 햇빛을 받은 말들이
   따뜻한 물속에서 녹기 시작한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아지랑이처럼
   물오른 말이 다른 말을 부르고 있다

   부디,
   이 소란스러움을 용서하시라

 

 

   -- 『그녀에게』예경,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