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지금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 - 문태준

공산(功山) 2020. 1. 16. 13:38

   지금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

   문태준

 

 

   만일에 내가 지금 이곳에 있지 않았다면

   창백한 서류와 무뚝뚝한 물품이 빼곡한 도시의 캐비넷 속에 있지 않았다면

   맑은 날의 가지에서 초록잎처럼 빛날 텐데

   집 밖을 나서 논두렁길을 따라 이리로 저리로 갈 텐데

   흙을 부드럽게 일궈 모종을 할텐데

   천지에 작은 구멍을 얻어 한 철을 살도록 내 목숨도 옮겨 심을 텐데

   민들레가 되었다가 박새가 되었다가 구름이 되었다가 비바람이 되었다가

   나는 흙내처럼 평범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