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가난한 가을 - 노향림
공산(功山)
2019. 10. 18. 14:13
가난한 가을
노향림
가난한 새들은 더 추운 겨울로 가기 위해
새끼들에게 먼저 배고픔을 가르친다.
제 품속에 품고 날마다 물어다 주던 먹이를 끊고
대신 하늘을 나는 연습을 시킨다.
누렇게 풀들이 마른 고수부지엔 지친
새들이 오종종 모여들고 머뭇대는데
어미 새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음울한 울음소리만이
높은 빌딩 유리창에 부딪쳐 아찔하게
떨어지는 소리만이 가득하다.
행여 무리를 빠져나온 무녀리들 방향 없이
빈터에서라도 낙오되어 길 잃을까
드문드문
따듯한 입김 어린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다.
그 지시등 따라 창 밑까지 선회하다가
있는 힘 다해 지상에서 가장 멀리 치솟아 뜬
허공에 무수히 박힌 까만 충치 자국 같은 비행체들
캄캄한 하늘을 날며 멀리로 이사 가는
철새들이 보이는 가을날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