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슬픈 열대 - 황인숙

공산(功山) 2018. 11. 7. 21:43

   슬픈 열대

   황인숙

 

 

   어제도 그제도
   고양이 밥 주지 말라고 시비 걸던 남자 노인
   오늘도 난닝구 바람으로 나와 있네
   나도 모르게 고개 치켜들고
   그쪽 하늘 향해 미친 듯 소리 질렀네
   "루저들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
   루저! 루저! 루저! 루저!
   루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구!"
   내 서슬에
   지나가던 청년 흠칫 쳐다보고
   노인은 꼬리를 감췄네
   세상에, 내가 이런 인간이구나!
   칠십 줄에 가족 없이, 에어컨도 없이
   하숙방에 사는 사람한테
   아, 내가, 내 입에서!

   루저가 루저한테 생채기 주고받는
   열대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