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시월에 - 문태준

공산(功山) 2018. 9. 7. 09:34

   시월에

   문태준

 

 

   오이는 아주 늙고 토란잎은 매우 시들었다

 

   산 밑에는 노란 감국화가 한 무더기 헤죽, 헤죽 웃는다 웃음이 가시는 입가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꽃빛이 사그라들고 있다

 

   들길을 걸어가며 한 팔이 뺨을 어루만지는 사이에도 다른 팔이 계속 위아래로 흔들리며 따라왔다는 걸 문득 알았다

 

   집에 와 물에 찬밥을 둘둘 말아 오물오물거리는데

   눈구멍에서 눈물이 돌고 돌다

 

   시월은 헐린 제비집 자리 같다

   아, 오늘은 시월처럼 집에 아무도 없다

 

 

    『가재미 문학과지성사, 2006.